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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팩티브 스튜디오 스틸 라이프 EDP (Olfactive Studio Still Life)

올팩티브 스튜디오 디스커버리 세트 중 스틸 라이프

 

올팩티브 스튜디오 스틸 라이프 오 드 파팡(오 드 퍼퓸)

사실 전혀 구입할 생각이 없던 향수입니다. 실제로 구입한 건 아니에요. 그냥 친구가 올팩티브 스튜디오의 디스커버리 패키지를 구입했는데 전부 본인 취향이 아니어서 나눔을 했고, 그날 왜인지 이 향이 좋게 느껴져서 가져왔습니다. 그날 코가 좀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. 아무래도 그날 온갖 향수 가져와서 서로 보여주던 날이라, 후각이 둔해졌던 듯 싶어요. 왜냐하면 이거 탑노트 정말 심각하게 제 취향 아니거든요. 그때 정말 첫향의 순간만 맡았을 텐데 뭘 보고 가져왔을까...?

 

 

스틸라이프 노트 구성 - 출처: 프래그런티카

* 탑노트: 유자, 엘레미, 핑크 페퍼, 블랙 페퍼, 스추안 페퍼(중국 사천 후추)
* 미들노트: 스타 아니스, 갈바눔
* 베이스 노트: 다크 럼, 시더 우드, 앰브록스


많은 분들이 탑노트에 유자나 시트러스한 레몬이 많이 느껴진다고들 하시던데, 저는 이 향수를 표현하자면 통후추 통페퍼를 엄청나게 쌓아두고 그 속에 오랫동안 묻어서 절여놓은 생유자...라고 하고 싶습니다. 첫 향에 정말 스파이시한 페퍼가 강하게 느껴져요. 코를 탁 때리는 스파이시함에 저는 유자향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어요. 이 정도면 거의 인간페퍼다 싶은 느낌. 저는 여기서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물 묻힌 티슈로 좀 닦아냈어요. 그런데도 향이 생각보다 강해서 오래 남아있더라고요.

그래서 고통스럽게 그냥 견디고 있었는데 한 시간쯤 지나니 향이 변하는 게 느껴졌습니다. 발향되는 향이 페퍼에서 시큼한 시트러스 향으로 바뀐거예요. 그런데 이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유자에이드나 레몬주스같은 새콤달콤한 통통 튀는 향이 아니예요. 쨍하게 코를 찌르는 생유자 겉껍질에서 날 듯한 아주 시큼한 향이었습니다. 저 사진에 있는 유자 껍질을 그대로 씹었을 때 날 것 같은 향이에요.

신기한 건 손목에 코를 대 보니 피부에 남은 잔향은 약간 달콤하고 청량한 우디향이 나더라고요. 그렇게 날 고통스럽게 했던 페퍼가 이렇게까지 변하나? 싶었어요. 물론 발향되는 유자 향에는 계속해서 스파이시한 페퍼향이 묻어납니다. 그냥 상큼한 유자가 아니예요. 좀 더 스파이시하고, 진짜 해가 엄청나게 내리쬐는 여름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고 눈이 따가워서 맵게 느껴질 정도잖아요? 그런 햇빛을 받아내는 여름 느낌도 좀 납니다.

두 시간쯤 지나면 이제 스파이시함은 많이 가시는데 비해 유자의 시트러스함은 상당히 오래 지속됩니다. 시트러스 향수 치고는 지속력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. 이 시점부터는 오히려 유자 향이 달착지근하지 않아서 괜찮더라고요. 좀 날카롭고 쨍한 느낌은 있지만 그래서 좀 더 높고 경쾌한 느낌은 있습니다.

 

저는 사실 시트러스 향은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. 스파이시 향은 좀 더 안 좋아합니다. 그렇지만 탑노트의 엄청 강한 스파이시 페퍼 향만 지나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아요. 시트러스 향 중에서는 꽤 독특하고 유니크한 느낌이고, 시트러스 매니아분들 중에서는 취향 저격할 만한 향이라고 생각합니다. 저는 이 탑노트가 다른 달달한 향수랑 레이어드해서 쓰면 좀 괜찮을 것 같아서 다음엔 그렇게 시도해보려고 합니다.